디자인 회사가 ERP를 직접 개발한 이유

디자인 스튜디오가 ERP를 만든다고 하면 대부분 의아해합니다. 저희도 처음부터 계획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러 갔다가 진짜 문제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건축 외장재를 만드는 회사에 홈페이지 리뉴얼 상담을 갔을 때였습니다. 회의 중에 담당자가 자꾸 자리를 비웠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현장에서 재고 문의 전화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엑셀 파일을 열어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엑셀 파일이 여러 개였습니다. 입고 파일, 출고 파일, 현장별 정산 파일. 각각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있었고, 월말이면 세 파일을 맞추느라 며칠이 걸렸습니다. 파일 이름은 '최종_최종_진짜최종'이었습니다.

홈페이지가 예뻐진다고 이 문제가 풀리지는 않습니다.

기성 ERP가 답이 되지 않는 이유

"그럼 시중 ERP를 쓰면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옵니다. 실제로 그 회사도 예전에 도입을 검토했다가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 기능의 90%를 쓰지 않는다 — 생산관리, 인사, 회계, 원가까지 다 들어 있는데 정작 필요한 건 자재 입출고와 현장별 정산뿐이었습니다. 쓰지 않는 기능이 화면을 복잡하게 만들어 직원들이 쓰기를 꺼렸습니다.
  • 업무를 시스템에 맞춰야 한다 — 이 회사는 같은 자재를 현장별로 다른 단가에 공급합니다. 기성 시스템은 이 구조를 표준으로 보지 않아서, 결국 업무 방식을 바꾸거나 엑셀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 월 사용료가 계속 나간다 — 직원 5명 규모에서 몇 년 치를 합산해 보면 부담이 큽니다.
핵심

중소 제조기업에 필요한 건 작은 ERP가 아니라 우리 업무만 담은 시스템입니다. 기능을 줄인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물건입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Python 기반으로 자재관리 시스템을 설계해 개발하고 납품을 완료했습니다. 담은 기능은 많지 않습니다.

  • 자재 입고·출고 등록과 실시간 재고 조회
  • 선입선출 방식의 재고 단가 계산
  • 거래처·현장별 단가 관리
  • 거래명세서·견적서 발행과 이력 관리
  • 월별 정산 자동 집계
  • 직책별 접근 권한 구분

이 목록에 없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산 계획도, 인사도, 회계 연동도 넣지 않았습니다. 필요하지 않았으니까요.

디자인 회사가 만들어서 다른 점

개발사가 만든 시스템과 저희가 만든 시스템의 차이는 기능이 아니라 화면에서 납니다.

쓰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이 시스템을 쓰는 사람은 IT 담당자가 아니라 자재를 직접 만지는 직원입니다. 그래서 한 화면에 입력 항목을 20개씩 넣지 않았습니다. 자주 쓰는 기능은 첫 화면에서 두 번 안에 닿게 하고, 월말에만 쓰는 기능은 깊이 넣었습니다.

출력물이 곧 결과물이다

제조업 현장에서 시스템의 최종 산출물은 화면이 아니라 종이입니다. 거래명세서와 견적서가 거래처에 그대로 전달되므로, 이 출력물의 편집 품질이 회사의 인상을 결정합니다. 인쇄물을 17년 만들어 온 입장에서 이 부분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와 데이터를 나눠 쓸 수 있다

제품 정보를 시스템에 등록하면 그 데이터가 홈페이지 제품 페이지에도 반영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두 곳에 같은 내용을 두 번 입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디자인과 개발을 한 팀에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

현재는 용접자재 업체의 제품관리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수백 개의 제품 규격을 관리해야 하는 회사인데, 여기서 나온 요구가 흥미로웠습니다.

  • 제품 이미지를 올리면 자동으로 크기와 배경이 규격화될 것
  • 등록한 제품을 클릭 한 번에 상세 PDF로 저장할 수 있을 것
  • 한국어·영어·일본어를 한 화면에서 함께 관리할 것

세 가지 모두 일반적인 ERP의 영역이 아닙니다. 카탈로그를 만들어 본 회사만 떠올릴 수 있는 요구에 가깝습니다. 제품 등록이 곧 카탈로그 제작이 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시스템 도입을 고민한다면

먼저 확인해 보시면 좋을 질문들입니다.

  • 같은 정보를 두 곳 이상에 중복 입력하고 있는가
  •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확인이 안 되는 자료가 있는가
  • 월말 정산에 며칠이 걸리는가
  • 파일 이름에 '최종'이 두 번 이상 들어가는가
  • 거래명세서를 손으로 옮겨 적고 있는가

세 개 이상 해당한다면 시스템을 검토할 시점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크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아픈 업무 하나만 먼저 시스템으로 옮기고, 쓰면서 넓혀가는 방식이 실패 확률이 훨씬 낮습니다.

웨이브픽셀은 홈페이지·카탈로그와 함께 제조 현장의 관리 시스템을 직접 개발합니다. 외주로 넘기지 않기 때문에, 화면 하나를 바꾸는 데 몇 주씩 걸리지 않습니다. 현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같이 정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ERP 개발에 기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범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자재 입출고와 정산 정도의 단일 목적 시스템은 2~4개월, 여러 부서가 함께 쓰는 규모는 그 이상이 걸립니다.

비용은 기능 개수보다 업무 규칙의 복잡도가 결정합니다. 단가 산정 방식이나 승인 절차가 복잡할수록 개발보다 정의에 시간이 더 듭니다. 상담에서 업무 흐름을 먼저 정리한 뒤 범위를 확정합니다.

기존 엑셀 데이터를 옮길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엑셀 이관으로 시작합니다. 다만 파일마다 형식이 다르고 중복·오타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이관 전에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정리 과정에서 그동안 맞지 않던 수치의 원인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원들이 잘 쓸 수 있을까요?

도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기능을 최소로 시작하는 방식을 권합니다. 첫 버전은 지금 하던 업무를 그대로 옮기는 수준으로 만들고, 익숙해진 뒤 기능을 더하는 순서입니다. 납품 시 실무자 교육과 매뉴얼을 함께 제공합니다.

클라우드로 써야 하나요, 회사 서버에 두어야 하나요?

직원이 외부에서도 접속해야 한다면 클라우드가 편리하고, 데이터를 외부에 두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내 서버에 설치합니다. 규모가 작다면 클라우드 호스팅으로 시작해 필요할 때 옮기는 방식이 초기 비용 면에서 유리합니다.

납품 후 기능을 추가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자체 개발이라 구조를 저희가 파악하고 있어 기능 추가가 비교적 빠릅니다. 납품이 끝이 아니라 운영·수정·기능 추가까지 이어서 함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지금 우리 회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상담은 견적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계약 전에 시안을 먼저 보여드립니다.